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리즈(야구)/KBO 리그 (문단 편집) === [[해태 타이거즈]] vs [[쌍방울 레이더스]] === ||<-2><:> {{{#ffffff 존속 기간 : 1991년~1999년}}} || ||<#f01e23> [[파일:해태 타이거즈 심볼(1982~1995).svg|width=100]] ||<#ffc81e> [[파일:쌍방울 레이더스 심볼(1991~1999).png|width=100]] || ||<#f01e23> [[해태 타이거즈|{{{#000000 {{{+1 '''해태 타이거즈'''}}}}}}]] ||<#ffc81e> [[쌍방울 레이더스|{{{#000000 {{{+1 '''쌍방울 레이더스'''}}}}}}]] || '''호남 시리즈''' 광주·전남권을 연고로 하는 해태와 전북권을 연고로 하는 쌍방울의 시리즈. 쌍방울은 해체됐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다. 창원에 제9구단 창단이 확정됐을 때 전북권에서도 창단의 목소리가 나왔고 [[부영그룹]]이 나서서 제10구단 유치를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[[kt wiz|수원 KT]]에게 밀려 무산된 상태다. 다만 이 매치업은 해태와 쌍방울이 서로 공존할 때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됐다고 보기 어렵다. 쌍방울이 해태보다 높은 순위를 차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. 돌풍을 일으켰던 1996년 이전까지 [[해태 타이거즈]]에 대한 전주시민들의 애정은 여전했고[* 해태가 전주 원정경기를 올 때 1루 쪽 쌍방울 팬의 숫자보다 3루 쪽 해태 팬들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다는 증언이 많다. 해태 팬이 더 많았던 것은 리그 원년부터 1989년까지 해태의 [[제2 홈구장]]이 [[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|전주 야구장]]이었고 해태에도 [[김성한]], [[조계현]], [[최해식]] 등 [[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|군산상고]]를 나온 전북 출신 선수가 적지 않았기에 당연한 일이다.] 이 때문에 전북지역 내에서 쌍방울의 존재감은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.[* 실제로 쌍방울에 대한 인기는 전북 내에서도 편차가 심했는데 쌍방울 홈경기가 열리는 [[전주시]]와 [[군산시]], 그리고 전주와 군산 사이에 끼어있는 도시이자 모기업 [[쌍방울]]의 창업지인 [[익산시]] 등 전북의 3대 도시에서만 그나마 쌍방울의 인기가 있었을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쌍방울의 존재감이 매우 미약했다. 특히 [[정읍시]], [[남원시]] 등 전주와 멀고 [[전라남도]]에 가까운 도시일수록 쌍방울보다 해태에 대한 인기가 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.] 1996년부터 3년간의 쌍방울 전성기가 오면서 전주에서 쌍방울의 인기가 급상승했고 1996년 해태가 정규시즌 1위, 쌍방울이 정규시즌 2위에 오르면서 사상 첫 호남 연고팀 간의 [[한국시리즈]]가 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커졌지만 그 해 정규시즌 4위로 가을야구 막차를 탄 [[현대 유니콘스]]가 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을 [[업셋]] & [[리버스 스윕]]하면서 호남팀간의 한국시리즈는 열리지 못했다. 그리고 IMF 외환위기 이후 해태와 쌍방울 모두 쇠락의 길을 걸었고 쌍방울은 구단이 통째로 사라지는 비운을 맛봤다.[* 해태 타이거즈는 2001년 8월부터 [[KIA 타이거즈]]로 재편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.] 축구에는 [[전북 현대 모터스]] 대 [[전남 드래곤즈]]의 [[더비 매치/클럽/대한민국#s-3.18|호남 더비]]가 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